평사원에서 전문직으로 이직 후기 feat. 세상에 더 좋은 직장은 많다. 이직 고민, 진정한 워라밸에 대한 생각
안녕하세요. 저는 2023년도 60회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운이 좋게 꽤 큰 대형 세무법인에서 수습세무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무사가 되기 이전에 일반 사기업에서 4년 반동안 사원~대리를 보낸 이력이 있었고, 비록 평사원에서 전문직으로 전직한 것이지만 직장생활을 이어간 것이기 때문에 이직한 후기를 남기고자 합니다. 현재 딱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이직을 고려하시는 4~5년차 대리급 분들에게 저의 후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세상에 더 좋은 직장은 많다.
숨 막혔던 첫 직장 생활
제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할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제가 다니던 첫 회사는 아주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인격살해를 해댔고, 그 과정을 버티면 그 조직에 내부자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그만두었습니다. 실제로 저의 동기는 사내에서 집단적으로 괴롭힘 당해서 9개월만에 권고사직 당했습니다. 경력직으로 오신 분들도 예외는 아니라서 대기업에서 경력직으로 오신 분들도 대부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 두었습니다.
첫 직장은 매일 출근하는 것이 죽고 싶었고, 사무실이 숨막혔습니다. 보통 직장인은 금요일이면 주말을 생각하고 기분이 좋아지고, 일요일에 우울하지만, 저는 금요일부터 다음주 월요일에 출근할 생각을 하면서 죽고 싶었습니다. 거의 일요일 저녁은 월요일 출근 때문에 공포감을 느낄 정도 였습니다. 이건 4년을 넘게 다녀도 고쳐지지 않더라구요. 월요일마다 팀장회의가 있어서 임원이 소리지르면서 화내니까 분위기가 너무 안좋았거든요....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에서는 여가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칼퇴해도 지금처럼 블로그에 포스팅한다던가, 부업을 한다던가 하는 마음의 여유가 전혀 생기지 않았거든요. 퇴근해서도 다음날 출근할 스트레스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게 그냥 원래 직장 생활인 줄 알고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대략적으로 직원들과 친해지는데는 1년 반의 시간이 걸린 것 같지만, 4~5년차가 되고 대리가 되어도 숨 막히는 사무실 분위기는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알고보니 경력직이신 분들한테 물어보니 진짜 여기 이상한 회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럼에도 내가 떠나지 못한 이유 : 가스라이팅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직장을 무려 4.5년이나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힘든데 왜 버텼냐 라고 물어본다면 저도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듭니다만, 가스라이팅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기업이 마찬가지이지만, 신입사원이 입사하게 되면, 정신 개조에 돌입하게 됩니다. 공식적으로는 이 회사의 비전 등을 주입하고, 얼마나 대기업이고 잘 성장하고 있는지를 교육하며, 실제 부서에 투입되면 끊임없이 이 직장이 최고의 직장인 것처럼 가스라이팅합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이 회사가 최고다, 다른데 가봤자 다 똑같다, 여기만한데 없다, 이직한다고 나가서 잘된 사람 한 명도 못봤다 라는 등의 가스라이팅을 끊임없이 당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저처럼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공부)를 더 파고들어서 개인의 목표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회사의 목표(예를 들면 매출 2,000억원 달성, 생산량 10,000톤 달성같은)가 마치 나의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로 세상의 모든 회사가 이렇게 힘들고, 남들도 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구나, 여기가 최고네 라는 생각을 하고 버텼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회사생활을 하다가 다시 본인의 꿈을 위해 더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회사를 차마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다 : 세상에 더 좋은 직장은 많다
전직장에서 어쨋든 저는 퇴사를 하고 세무사로서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직장에서 받은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 처음에 출근할 때는 마찬가지로 꽤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전직장에서 받은 가스라이팅으로 모든 회사가 전직장보다 분위기가 안좋다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그래서 마찬가지로 죽고싶어도 이악물고 버틸 각오를 하고 출근하였습니다.
하지만 첫 1주차 출근을 하고 나니, 사무실 분위기가 이전 직장과는 다르게 너무 좋았습니다. 비록 세무사라는 전문직이기는 하지만, 수습 세무사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사기업의 신입사원과 똑같은 존재인데도, 인격살해같은 무자비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전 직장보다 훨씬 자유롭고, 수평적인 사무실이 너무 좋고, 이러한 수평적인 분위기 덕분에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훨씬 부담없이 선배 세무사님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아직 시즌 기간이 아니라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이직을 하면서 만족도는 너무 좋습니다. 물론 급여는 수습이고, 만약 근무세무사가 되어도 전직장에서 받는 것보다 적겠지만요, 그래도 저는 돈보다 일하는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주차를 다니고서 금요일 퇴근하면서
아 전직장은 나한테 정말 맞지 않는 회사였구나, 진작에 때려치고 이직할 걸
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이직을 하면서 생긴 변화 : 퇴근 후, 일요일 스트레스가 경감되다
아직 1주차이지만, 이직을 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퇴근 후 그리고 일요일에 받던 극도의 다음 날 출근 스트레스가 경감되었다는 것입니다. 전혀 스트레스가 없다라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퇴근 하자마자 혹은 일요일에 다음 날 또 숨막히는 사무실에서 보낼 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우울증이 올 정도의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이전 직장보다 퇴근시간도 늦고 지옥철 때문에 훨씬 출퇴근이 힘듦에도 워라밸이 훨씬 좋아졌음을 느낍니다. 퇴근 후에는 기분 좋게 운동이든 외국어 공부든 한가지의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수월해서 요즘은 아침을 꼬박 꼬박 챙겨먹으며 다음 주 부터는 더 일찍 일어나서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등의 미라클 모닝을 실행해볼 생각입니다.
또한 주말의 저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전 직장에서는 금요일에 퇴근해도 다음 주 월요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항상 주말에 늦게 일어났고, 주말은 순삭되고, 스트레스는 극심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생활이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는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지게 되어서 부모님 집에도 다녀오고, 아침 6시에 기상해서 집 주변 도서관에서 독서도 하는 등 매우 알차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을 위해 온전히 시간을 보낼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워라밸의 핵심은 단순히 칼퇴가 아니라 직장 스트레스에 있지 않을까?
이직을 하고 첫주말을 보내면서 워라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전 직장에서도 근무 시간만 따지면 워라밸이 나쁜 편은 아니었습니다. 8-5의 근무시간, 거의 칼퇴는 보장되었고, 저는 좀 멀리 부모님 집에서 통근했지만 그래도 퇴근하고 나면 7시정도였으니 말이죠.
사실 따지고 보면 현재 직장이 워라밸은 더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9-6, 시즌 중에는 밤새야 됨, 강남이라 출퇴근 지옥, 칼퇴하고 집에 오면 7시 넘음 등등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지금 다니는 직장이 훨씬 워라밸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전직장을 다닐 때는 몸은 비록 퇴근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계속 출근한 상태와 바를 바 없었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워라밸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저는 어쩌면 워라밸이란 직장 내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핵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워라밸이란 단순히 물리적으로 칼퇴가 보장된다라는 의미에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처럼 몸만 퇴근하고 정신적으로는 직장에 출근한 상태와 바를 바 없다면 그게 과연 워라밸이 보장된 삶일까요? 사람이란 감정의 동물인데, 그냥 전원 스위치 on/off하면 회사와 나를 바로 분리가 가능한 걸까요? 특히 저처럼 소심하고, 스트레스에 약한 사람들일 수록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퇴근 후에는 정신적으로 직장에 대한 스트레스를 최대한 받지 않는 사내 분위기, 월요일에 다시 출근한다는 것이 스트레스일 수도 있지만, 그게 공포로 느껴질 정도가 된다면 아무리 칼퇴가 보장된다고 해도 그게 워라밸이 좋은 삶이라고 절대 볼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워라밸이 좋은 회사, 조직이란 하드웨어인 물리적 칼퇴시간만 보장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웃으면서 일하는 좋은 분위기, 수평적 구조와 눈에 보이지 않는 같은 소프트웨어야 말로 그 때 진정한 워라밸이 달성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경력직이여, 떠나라
분명히 저처럼 4~5년 이상 직장생활을 했는데 전혀 조직생활이 편해지지 않고 여전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이 계실 것 입니다. 저는 그 때, 과감하게 이직할 것을 권합니다. '여기보다 더 안좋은 곳이 대부분이라던데...' '사회생활이 원래 힘들지...' 라는 생각은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4~5년 이상 직장생활을 했는데도 여전히 신입사원처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건 해당 조직과 내가 맞지 않는 다는 얘기입니다.
세상에 더 좋은 사무실은 많습니다. 부디 이전 직장의 가스라이팅에 너무 매몰되지 마세요, 물론 연봉 등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분들이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저는 솔직히 연봉보다도 사람이 스트레스 때문에 죽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이 대한민국에는 경력직 여러분을 소중히 여겨주고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는 좋은 사무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찾아서 문을 두드려 보세요.
이상으로 오늘은 저의 첫 이직 후기를 남겨보았습니다. 물론 저는 평사원에서 세무사라는 전문직으로 이직한 것이라 얘기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이직이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직을 생각하시는 4~5년차 대리급 직원분들이나 혹은 그 이상인 분들, 혹은 신입사원들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직장생활과 이직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