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기부여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스토리 : 구로다 히로키 이야기 2편(메이저리그에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고국으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스토리 : 구로다 히로키 이야기 2편(메이저리그에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고국으로)

구로다 히로키 이야기 1편 : sacramony.tistory.com/19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스토리 : 구로다 히로키 이야기 1편(무명의 신인에서 일본 최고의 투수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야구 이야기 : 구로다 히로키 이야기 1편(무명의 신인에서 일본 최고의 투수까지)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도 감동을 느낌 수 있고, 책을 읽으면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다.

sacramony.tistory.com

 

 

 1.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다 : 메이저리그 진출

 2006년 FA를 철회 후 히로시마에서 1년을 더 뛴 구로다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다. 

"힘이 남아 있을 때 다시 돌아오겠다" 라는 말을 남긴 채....

 

이미 33살의 노장이 되었던 구로다는 메이저리그 진출부터 평범한 투수는 아니었다. 그를 영입한 다저스는 처음 4년 계약을 제시하였지만, 구로다는 스스로 계약을 1년 줄여달라고 요청하였다. 스스로 나태해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러나 구로다의 메이저리그 적응기는 쉽지 않았다. 원래 구로다는 약한 멘탈로 기복이 심한 투수였고, 제구가 되지 않는 날이면 본인 스스로 무너지는 경기도 많았다. 더욱이 히로시마에서는 에이스로 특별관리를 받았지만, 세계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는 인간들이 모인 메이저, 그것도 내셔널리그 최고 빅마켓인 LA다저스에서는 그런 특별관리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구로다는 그러나 본인이 약한 멘탈을 가졌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는 투수였고, 대신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고 남들보다 더 노력하는 투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속구와 칼날 제구를 가졌음에도 이대로는 힘들다는 위기의식에 다양한 변화구를 연습하여 기교파 투수로 변신하였고, 33살의 늦은 나이에 신인들조차 따라오기 힘든 메이저리그 훈련을 남들보다 훨씬 노력하여 소화하였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잘하지 않는 근력 웨이트 트레이닝을 늦은 나이에 시작했음에도 모두 소화해냈다. 

구로다가 메이저리그에서 하체를 훈련하는 모습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정면으로 극복하려 했던 자세, 이미 평범한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은 성실함과 노력으로 구로다의 메이저리그 연착륙은 성공적으로 이어져 갔다.

다저스에서의 성적, 다른 무엇보다 이닝수가 놀랍다. 얼마나 철저한 자기관리를 했으면...

 여담으로 구로다의 다저스 시절에는 특별한 인연도 있는데, 류현진 선수 덕분에 거의 명예 한국인 취급을 받는 커쇼이다. 구로다가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신인이었던 커쇼 또한 조용한 성격에 성실함으로 유명한데, 비슷한 성격의 구로다와 죽이 잘 맞았는지 매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다만 한번 같이 훈련 후, "구로다는 몬스터야!"라는 말은 남긴 채 다시는 훈련을 같이하지 않았다고 한다. 구로다가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다고 했을 때 커쇼가 '1년만 더 같이 뛰자'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구로다가 라커룸에서 펑펑 눈물을 쏟은 얘기는 너무나 유명한 일화이다.

 

 

 

  다저스와 3년 계약이 끝난 후 그는 1년 더 다저스에서 뛴 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게 된다. 이후 그는 단년 계약만 고집하였는데, 그 이유는 내후년을 기약하며 돌아갈 자리를 만들면서 야구하고 싶지 았았기 때문....

 

 어쨌든 구로다는 미국 최고의 명문팀인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게 된다. 선발 투수로서는 노장을 넘은 나이이기는 했지만, 이미 기교파로 완성된 투수이면서도 단년 계약을 고집하는 그를 탐내는 팀은 많았다. 

 

 그러나 그의 뉴욕 양키스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워낙 유리멘탈이었던 구로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것이었지만, 양키스라는 팀의 명성에 짓눌리고, 지랄에 가까울 정도로 극성맞은 팬들과 10경기 잘하고도 1경기 못하면 저주에 가까운 비판을 퍼붓는 언론까지.... 괜히 아시아 투수들이 양키스를 꺼리는 것이 아니다. 이 시기 구로다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신경쇠약까지 걸리게 되었다. 오죽했으면 그는 에이전트에게 "뉴욕 아파트에 베란다가 없어서 다행입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다행히 구로다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스스로를 갈고닦을 줄 아는 성품의 인간이었다. 양키스 또한 최고의 명문팀답게 그에게 멘탈 트레이너를 붙여주며 적응을 도왔다. 그 때 멘탈 트레이너가 던진 한 질문이 구로다를 각성하게 해 주었다.

 

"만일 당신이 등판하는 시합이 당신의 마지막 시합이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만일 오늘 당신이 등판하는 시합이 양키스의 마지막 시합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한마디에 구로다는 지금까지 스스로를 짓누르고 있던 완벽해야 한다, 팬들을 실망시켜선 안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대신 그는 '팀에 공헌해야겠다', '괜찮아, 내가 점수를 주어도 동료들이 만회해 줄 거야'라는 생각으로 압박감과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39살에 199이닝이라....

 이후 구로다의 양키스 성적은 경이로울 정도이다. 이때의 구로다는 암흑기를 보내던 양키스를 지탱하던 동양에서 온 이방인 투수였다.

 

추억 팔이가 아니라 실제로 구로다는 양키스의 에이스 취급 받았다

 

 구로다는 양키스에서 3년 연속+다저스에서 2년 연속 도합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라는 아시아에서는 노모 히데오, 박찬호만 가지고 있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후에 다나카 마사히로가 6년 연속 양키스에서 두자릿수 승수 기록을 세우긴 했지만.

 

 이후 양키스와 1년 계약이 만료된 후 모든 사람들이 그의 행보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2.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카프 덕택이다. 언젠가는 돌아가서 보답하고 싶다. 일본에 돌아간다면 카프밖에 없다. 돌아간다면 힘이 있을 때 돌아가고 싶다.

ㅡ 2007년 LA 다저스로 진출할 당시 인터뷰 중에서.
그가 미국으로 떠날 채비를 할 때, 일본에서는 그가 얼마 못 가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고,

그가 일본으로 떠날 채비를 할 때, 미국에서는 그가 정말 돌아갈 것이라 믿지 않았다.

결국 몇 년이 걸려도 그가 돌아올 것을 믿은 것은 구로다 히로키 자신과 히로시마 도요 카프뿐이었다. 히로시마는 돌아올 구로다를 위하여 7년 동안 그의 15번을 비워놓고 있었다.

이제 그는 다시 15번을 달고 히로시마에서 뛸 것이다.

아마도 공을 던질 힘이 남아 있는 한 영원히.

-출처 :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55644

 39세 나이에도 199이닝을 던지는 미칠듯한 자기 관리 능력,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 7년 연속 3점대 방어율, 양키스와 1년 계약 후에도 구로다를 탐낸 메이저리그 구단은 많았다. 다저스는 1년 1600만 달러+200만 달러 옵션, 샌디에이고는 1800만 달러에 그를 영입하려 했다(참고로 현재 류현진은 4년 8000만 달러). 하지만 구로다 히로키는 4억 엔이라는 1/4 밖에 되지 않는 금액에 돌연 히로시마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다!

 

 

구로다의 복귀, "무난한 삶을 원한다면 여기 오지 않았다"라고 씌여있다.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히로시마는 발칵 뒤집혔다. 연말 연휴임에도 현수막 제작 업체는 연휴를 반납하고, 자비로 현수막을 제작에 나섰고, 은행에서는 빨간 유니폼을 입고 근무를 했다. 히로시마 도요카프는 연간 회원권을 사상 처음으로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가 일본으로 복귀하면서 한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私の娘たちは、野球が大好きです。私の試合が終わった後は、いつも「かっこいいパパ、がんばってください」と言ってくれます。ヤンキースの試合を娘たちはよく見ていました。平凡な私が娘たちに大きいい影響を与えていました。

제 딸들은 야구를 아주 좋아합니다. 제 경기가 끝나고 나면 항상 「멋진 아빠 힘내세요」라고 말하죠. 딸들은 양키스 경기를 즐겨 보곤 했습니다. 평범한 제가 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죠.


このようにスポーツ選手は子供の精神や考え方に対して大きな影響を与えています。それは、正々堂々と戦う、努力を積み重ねる、正直に生きる等、人生の基本を伝える役割があると思います。

이처럼 
스포츠 선수는 아이의 정신과 사고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꾸준히 노력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 등 인생의 기본을 전해주는 역할이 있다
고 생각합니다.



長嶋茂雄さんは、野球で子供たちに夢を与えようと、常に意識していたそうです。これがプロスポーツ選手の姿でしょう。スポーツ選手は、子供たちに「夢を与える存在なんだ」ということを自覚して、子供たちの模範になるような姿を示し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私がこんなに多い年俸を受け取るのも子供たちとファンのおかげだからです。

나가시마 시게오씨는 야구로서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겠다고 항상 의식하며 행동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프로 체육인의 모습이지요. 
스포츠 선수는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아이들의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연봉을 받는 것도 어린이와 팬들의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後で私の人生を振り返って見たとき家族に恥ずかしくない姿を見せたい、それが私の夢です。

훗날 내 인생을 돌이켜 볼 때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나의 꿈입니다.


黒田博樹

구로다 히로키

 

 이미 현역 시절부터 자기 관리에 정평나 있었던 구로다는 복귀 첫 해에도 169.2이닝, 2.55의 평균자책점 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보여주었지만, 답이 없는 팀 사정에 히로시마와 구로다의 리그 우승 재펜 시리즈 우승은 물 건너가게 된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시기에 히로시마의 에이스 역할을 맡고 있던 것은 다저스에서 뛰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에다 겐타'인데, 그 또한 성실한 자세, 팀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옵션 생각하지 않고 희생하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결국 다저스에서 고생하다 미네소타로 이적 후 MVP급 활약을 하니, 묵묵한 노력은 결국 보답받는 다는 것의 표본인 듯 하다. 필시 구로다의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싶다.

 

 2015년 리그 우승에 실패하고 구로다의 은퇴를 다들 예상하였으나....

 

 2016년 6억엔에 현역 연장을 하게 되었고, 구로다는 NPB 최고 연봉자가 되게 된다. 이 해 구로다는 미일 통산 200승을 달성하였으며, 대망의 9월 10일... 요미우리전에서 마침내 자신의 손으로 카프의 25년만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결정짓게 된다! 그리고 대망의 일본 시리즈에서 그 오타니의 닛폰햄 파이터즈와 맞붙게 된다. 

 

 

 그러나 그토록 염원하던 일본 시리즈에서도 3차전에 5와 2/3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그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일본 시리즈 등판이었다. 결국 히로시마 도요카프는 오타니를 앞세운 닛폰햄에 패배하게 되었다. 

 

 이후 구로다는 히로시마에서 우승 퍼레이드를 한 후 은퇴하며 길고 길었던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3. 구로다라는 꽃이 곱다

 

구로다의 야구 이야기는 비단 스포츠가 아니라 우리 인생에 큰 울림을 준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묵묵하게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그것의 가치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언젠가 제2의 구로다가 나와 또 다른 감동을 주기를 기다리며, 아듀 카프의 에이스 No.15 구로다 히로키.